희귀영상방

추억의 아이들 '땅따먹기' 현장

뛰노라면 2011. 9. 5. 12:42

 

아이들 '땅따먹기' 현장을 잡다

그 많던 추억의 놀이는 다 어디로 갔을까

 

▲ 자, 잘들 봐.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라는 노래가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80년대에 발표된 노래일 것이다. 정확하게 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음과 박자, 그리고 가사가 주는 분위기는 또렷하게 기억난다. 내 어릴 때 일요일 풍경을 너무나도 잘 묘사한 노래였다.

눈뜨자마자 밖으로 나가 밥도 안 먹고 놀다 보면 어느새 석양이 서녘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그리고 멀리서 교회 종소리가 들려오고, 두부 장수가 작은 종을 딸랑거리며 지나간다. 아이들이 놀던 놀이터는 점차 짙은 땅거미에 휩싸이고, 같이 놀던 아이들이 하나둘 집으로 달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비로소 실감한다. 아, 일요일이 다 지나갔구나. 그렇게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는 어린 나를 무척 슬프게 했다.

컴퓨터·텔레비전 없어도 즐겁던 시절

참 무던히도 돌아다녔다는 기억이 난다. 하긴 그 때는 집에서 놀 수 있는 '꺼리'가 별로 없었다. 요즘처럼 장난감도 없었고, 일부 부유한 집만 갖고 있었던 텔레비전은 먼 외계의 물건이었다. 찌직거리며 가요나 뉴스를 틀어대는 라디오는 어찌 그리 재미없는지. 그래도 '마루치 아라치'라는 라디오 드라마는 무척 재미있었다.

아쉽고 허전했지만 나는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그러면서 호주머니에 두 손을 쓱 넣어본다. 오늘 결산을 해봐야지. 유리구슬이 10개, 종이 딱지가 20개, 돌필(석필)이 1개라. 꽤 괜찮은 소득인 것 같다. 하루종일 재미있게 놀고 전리품도 챙겼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나. 오늘은 만족한다.

그런데 오늘 낮에 땅따먹기에서는 너무 비참하게 지고 말았다. 내일은 반드시 이겨야지. 오징어땅콩 놀이도 괜찮았어. 내가 일등을 4번 했잖아. 그리고 시마차기에서도 2번이나 일등했잖아. 정말 재미있었다. 다음에는 자치기에서도 이겨야지.

컴퓨터가 없어도 텔레비전이 없어도 내 어릴 때의 놀이는 참으로 다양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친구들이 몰려와 '같이 노올자'를 반복하면 휑하니 달려나갔다. 아이들이 얼마 없으면 우선 두세 명이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놀이를 한다. 공기돌 놀이나 홀짝 놀이, 아니면 땅따먹기 놀이를 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숫자가 제법 많아지면 본격적으로 시마차기나 오징어 땅콩 같은 집단적인 놀이를 했다. 어떤 때는 확실하게 편을 갈라 자치기도 많이 했었지. 작은 막대기를 긴 막대기로 툭 쳐서 허공에 날려놓고 마치 배트로 공을 치듯이 작은 막대기를 힘차게 칠 때의 쾌감이란!

▲ 자, 시작한다.

돈도 재료도 필요없는 놀이

그런데 요즘 아이들에게도 이런 전통적인 놀이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 같아 무척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아파트 문화가 주종을 이루고 시멘트가 우리의 흙길을 무참히도 포장한 요즘에도 아이들은 흙을 이용한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그것은 대단한 반가움이요, 흐뭇함이요, 아름다움이었다.

사실 다른 놀이에 비해 땅따먹기 놀이는 아무런 재료와 돈이 들어가지 않아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고, 쉽게 멈출 수 있는 놀이다. 그저 커다란 원이나 사각형을 그을 수 있는 흙바닥과 길가에 굴러가는 작은 돌멩이 하나만 있으면 되었다.

세 명 혹은 네 명이서 귀퉁이에 손가락 뼘만한 공간을 만들면서 이 놀이는 시작된다. 자기 집에서 출발하여 정확하게 세 번을 튕겨서 다시 자기 집으로 오면 돌멩이가 지나간 자리는 자기 땅이 되었다. 그 누구의 땅도 아닌 자신의 땅이 되었다. 그 땅의 실제 임자가 누구이든지 놀이를 하는 동안에는 자신의 땅이 분명한 것이다. 비록 놀이가 끝나면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땅이긴 하지만.

다른 놀이와는 달리 이 땅따먹기 놀이에는 우리네 민중들의 소박한 꿈과 희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주와 소작농이라는 계급관계가 엄연히 존재했던 시절에 민중들의 가장 큰 희망은 자기 땅을 가지는 것이었다.

땅은 모든 것을 제공했다. 식량과 물, 주택과 돈을 주는 땅. 아무리 험한 일을 당하여도 결코 사라지거나 닳아 없어지지 않는 땅. 단 한 뼘의 땅이라도 자기 것이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였다. 이 소중한 땅을 좀 많이 차지하였으면, 이 귀중하고 영험한 땅을 좀 많이 가졌으면….

아마 땅따먹기는 민중들의 이런 소박한 꿈과 희망이 응축된 놀이일 것이다. 오죽했으면 아이들이 그런 놀이를 자연스레 하게 되었을까.

노름으로 변한 사이버 땅따먹기

▲ 방금 내가 따먹은 땅이야

그래서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부동산에 대한 열망이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뭐라더라. 우리나라 땅을 다 팔면 미국 땅을 다 사고도 남는다나 어쨌다나.

이런 면에서 보면 땅따먹기는 분명 부동산 정책에 역행하는 못된(?) 놀이임에 틀림없다.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부동산 소유에 대한 욕망을 심어주니 말이다. 그것도 너무나 쉽게 땅을 취득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니 이건 놀이가 아니라 노름에 해당될 정도로 해로운(?) 게임이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땅따먹기를 이용한 변종 게임이 컴퓨터나 핸드폰에서 판치고 있으니 그저 개탄스러울 뿐이다. 주로 여인들의 옷을 벗기는 사이버 땅따먹기 게임이 마구 돌아다닌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나라님에게 상소문을 올려 이 못된 놀이를 철저하게 금지해야겠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기실 땅따먹기 놀이가 무슨 죄가 있으랴. 민중들의 소박한 열망을 담았다는 죄 아닌 죄밖에 없다. 아이들로 하여금 땅과 친숙하게 하고, 땅의 소중함과 땅의 기운을 받게 만드는 땅따먹기 놀이가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여인들의 옷을 벗기는 땅따먹기 게임도 저급한 일본 게임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지 우리 아이들의 건전한 생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얄팍하게 그 게임을 사행성으로 변질시킨 일부 어른들에게 잘못이 있을 뿐이다.

어느새 시계를 보니 일요일이 다 가고 있었다. 아파트 숲 속에서 그나마 흙을 만질 수 있는 놀이터에서 땅따먹기를 하던 어린 친구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뜬다. 그들이 모두 떠난 후에 남아 있는 땅따먹기 놀이터는 황량함마저 안겨준다. 그들이 방금 자신의 소유를 주장했던 땅들의 형상은 어지러운 무늬만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내일 저 땅은 원래의 모습을 갖출 것이며 다시 우리의 순수한 아이들을 맞이할 것이다. 신나게 자신을 가지고 놀라고 할 것이다. 자신을 어루만져 달라고 할 것이다. 그렇게 이 땅은 누천년의 세월이 흘러가도 우리의 아이들과 친숙한 스킨십을 계속할 것이다.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에 나의 추억도 함께 가고 있다. 그 많던 놀이는 다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