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명상음악

흥보가 - 박동진

뛰노라면 2011. 2. 22. 13:30

 

흥보가 중 '흥보 쫓겨나는 대목'


하루는 놀보가 흥보를 쫓아낼량으로 비오고 눈보라 쌔리는 날로 가려가꼬 이놈이 왜가리 성음을 내서 흥보를 부르는디, "네이놈 흥보야~아?" 흥보 깜짝놀래 공손히 올라가서 형님전 절을 하며, "형님 부르셨습니껴." "그래 불렀다. 네이놈, 듣거라. 너와 나와는 형제지만 부모생전 계실적으 등분있게 지낸것은 너도 응당 잘 알것이다. 우리부모 야속하야, 나는 집안의 장손이라고 선영을 맽기면서 글 한자 안가르치고 주야로 일만 시켜 소부리듯 부려먹고, 네놈은 지손이라고 특별히 사랑하야, 주야로 글만 갈쳐 호의호식 허던 일을 내가 지금 게야 생각헝께 분하기 짝이 없다. 이놈, 너는 부모세도를 믿고 그때 세도를 허였지만 이제는 부모가 없어졌어, 그러니, 나도 이제 내 마음대로 세도 좀 하여 보자. 이 집안 살림살이 논과 밭 내손으로 당 장만해가꼬 네놈 좋은 일 못하겄다 잉. 네 계집자식들이 여태까지 먹은 것은 값을 쳐서 받겠지만, 그는 응당 못할 망정 더 보던 안할텡께, 네 이놈, 계집자식 데리고 오늘 당장에 주먹 불끈 쥐고 떠나거라." 흥보가 기가맥혀 빌으면 될줄 알고,
"아이고, 형님 웬말씀이요, 부모생존에 허신 일은 제가 철이 없었으니 어이 되신 줄을 모르지만, 제가 무엇 잘못허면 형님 분이 풀리시도록 종아리를 때리든지, 둔장을 허시든지 처분대로 허실 일이지, 형제윤기 한가지로 등분 말씀이 웬말씀이요, 형님, 형님, 살려주시요."
"헤헤헤헤, 요놈, 글자나 배웠다고 주둥이로 나부랑 나부랑 잘 지껄인다. 듣기 싫다, 이놈아. 옛일을 생각하면 삼국시절에 조비는 제 동생을 죽였고, 또 당나라 당태종은 보위를 다퉈가꼬 그제 동생을 역시 죽였어. 그러니 날같은 초야농부야 형제윤기야 알겠냐, 네 이놈. 당장에 떠나지 않을 것 같으면 칼부림이 날것이다." "아이고 형님, 그러시면 이놈이 어디로 처자를 데리고 가오리까." "오냐."
"너 갈데가 많으구나. 산중땅 무인지경과 동네 앞을 지내가면 방앗간이 제격이요, 그렇지 못하거든 도방으로 찾아가서 네 자식새끼들은 생선엮기를 가르치고, 네 처가 밉잖으니 기생같이 곱게꾸며 색주가라고 이름을 지어 술방채려서 놓게되면, 근방의 건달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매기돈을 잡을거고, 널랑은 뒷방에서 놀음방을 채려놓고, 쇠좋운 투전, 골패, 장기, 바둑, 웇방석을 좌르르르 피여놓고 투전공 불공이며 낱낱이 띠여먹고, 네처는 간간 들어와서 술잔돌려 팔거드면, 그안에서 도는돈은 모두다 네돈이라, 한달만 하고보면 큰부자가 되리로다."
흥보가 형님 말씀을 들어보니 정이 뚝뚝 떨어지는구나. 흥보마음 곡직하고 처자를 앞세우고 남부여대 떠나간다.
"아이고, 형님 나는 가요, 이 엄동설한풍에 어느곳으로 가서 살드라오까. 지리산으로 가오리까, 백이숙제 주려죽던 수양산으로 가오리까. 형님 제발 덕분 통촉을 하옵소서. 어느곳으로 가오리까." "이놈아, 내가 너를 갈곳까지 일러줬는디, 웬잔말이 그리 많으냐. 잔소리말고 떠나거라." 흥보가 기가 맥혀 안으로 들어가서, "아이고, 여보 마누라, 형님이 나가라고 허시니 어느 영이라고 아니가며 어느 말씀이라 거역하리,. 자식들 챙겨보게, 큰자식아 어디갔느냐, 둘째놈아 이리오너라." 이삿짐을 짊어지고 놀보 앞에가 늘어앉어, "형님 갑니다. 부디 안녕히 계옵시오," "잘가거라," "아이고, 아이고 내팔자야, 아이고, 아이고, 내신세야. 부모님이 살아 생전에는 내것내것이 다툼 없고 평생의 호의호식 먹고입고 쓰고남고, 쓰고먹고 입고 남아 세상분별 몰랐더니, 흥보놈의 신세가 졸지에 이리될줄 어느뉘가 안단 말인가,. 어느 곳으로 갈거나, 아서라 산중으로 가자. 경상도는 태백산, 전라도는 지리산이라, 산으로가 살자허니 백물이 귀하야 살 수 없고, 아서라 도방으로 가자, 일원산 이광경이 삼포주 사법성과 오개성 육도둔이며, 도방으가 살자허니 비린내에 속이 상하고, 서울가 살어보니 경우를 몰라 뺨을 맞고, 평안도로 가자허니 생소한 곳이라 살수없고, 경상도로 가자허니 사람이 뚝뚝해 재미없고, 전라도가 사자허니 계급이 많어서 살수없고, 충청도가 사자허니 양반들 기세에 살수가 없게 되니 어느 곳으로 간단 말이냐,."



박동진

흥보네 고생하는 대목



이렇듯이 고생을 허며 식구들을 데리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운봉땅 성현동 복도촌이라는 곳에 가가꼬 사는디, 그곳이 마참 인심도 좋거니와 농장도 년년이 풍년이 되는구나. 그동네에 빈집이 한채 있어가꼬 동네어른께 사정을 허고 그집을 년년이 얻었는디,
집 형상을 볼짝시면, 앞문에 살이 없고, 뒷벽은 와만 남고, 밖에서 세우 오면 방안에는 왕비오고, 멍석자리 거적문에 북데기로 이불 삼고, 벌거벗고 추운 방에 아니죽고 살아날제,
흥보가 의견을 내는디, 그 많은 자식들을 의복을 해 입힐수 없응께, 부자집을 다니면서 신짚을 한단씩 얻어다가 자식들을 앉혀놓고 멍석을 져루는디, 목아지가 날고 들만하게 멍석을 졀어갖고 상사죄인 칼씌우듯 후닥딱 씌워놓으니 몸뎅이는 간곳없고 대가리만 멍석 위에 메주뎅이 놓은듯이, 곤지러워 볼수 없고, 한놈이 장난내여 집어뜯고 낯틀어버리면 어떤 놈이 꼬집은줄 모르고, 아 이놈들이 한놈이 똥이 마리면 저만 빠져 나갈일이지 뭇놈이 다 나가는디, 적은 놈은 키가 작아 발이 땅에 안 닿으니 육성으로 목매달려가꼬, 나죽네 소리지르며 울고, 날이 쪼금 따땃하면 멍석벗고 밖으로 나와 양지바른곳에 노는 것이 꼭 고양이떼 노는 모양이라,. 하루는 이놈들이 여러날 밥을 굶어 음식타령을 허는디 한놈은 나앉으며, "아이고 어머니, 나는 배가고파 죽겠소이다. 아이고, 하얀쌀밥에 미역국좀 말아먹었으면 좋것네." 한놈이 나오더니 "아이고 어머니, 나는 그저 호박떡이나 배아지가 불러보게 먹어봤으면 좋겠소." 또한놈이 나오면서, "아이고, 어머니 나는 보리개떡이라도 그저 배가불뚝 일어나게 먹었으면 좋겠네."
막내놈이 들어올제 유혈이 낭자하여 즈그모친 앞으로 우르르르 달려들며 모친 무릎에 거꾸러지며, "아이고 어머니 나도 떡을 허여주오. 내가 지금 밖으로 동무찾아 놀러갔더니만 아이들이 몰려서 무얼 노나먹습디다. 자세히 살펴보니 떡을 노나먹습디여, 나도 조금 달랬더니만 그놈들이 허는말이 너도 떡을 줄것이니, 우리들 다리 밑으로 요리뀌어서 나가면 많이 준다고 허것기로, 얻어먹을 욕심으로 그놈들 다리밑으로 뀌어서 나오는디, 뒤에놈이 떨어져 앞에와 다시 붙고 또 뒤에놈이 떨어져서 앞에와 다시 붙으니, 아무리 내가 나올라고 애를 써봤지만 나올구녁이 없습디다. 말경에는 내가 땅에 처박히며 '나죽네' 소리를 지르니, 이놈들이 모두 도망가며 주먹으로 내 등감을 벼락치듯 때려노니 코에서는 피가나고 정신이 막막하여 가지고 반생반사 허여왔소. 나도 떡좀 허여주되, 멍석만큼 허여주면 그놈들 보는데서 감고먹고, 뚤뚤말고 벼개삼어 먹으라요." 흥보마누라가 기가맥혀, "아이고, 세상인심을 보소. 철모르는 어린것들도 부귀를 추세허여 내자식을 때렸구나. 우지마라. 우지말어라. 떡 먹을 때가 있는 법이니라. 우지말어라. 우지말어."
이렇듯 슬피울제, 그때여 흥보가 들어오다가 가만히 들어보니 흥보 맏자식이 저 북데기속에서 있다가 이놈이 제 어머니를 부르는디, "아이고, 어메" 흥보마누라 기가맥혀 "엇다, 이놈아 어는 어째 그렇게 목구녁에서 송아지 소리가 나느냐" "아이고 어머니, 나늘 말이죠, 밥도싫고 옷도싫고 돈도 싫고 아무것도 싫고, 한밤중만 되면 무단히 잠안오는 설움이 생겼소. 어머니, 아버지 공론하고 날 장가좀 들여주시요, 내가 장가가 가고 싶어서 그러면 시러베 아들놈이요 잉. 어머니 아버지 손자가 늦잖습니껴"
흥보마누라 기가맥혀 떴다절꺽 거꾸러지며, "엇따, 이놈아, 야이놈아 말들어라. 내가 형세가 있고보면 네 장가가 여태까지 있으며, 중한가장이 밥을 굶고, 어린자식을 벗기겄느냐 이놈아. 못먹이고 못입히는 어미 간장이 다녹는다."


 


놀보, 화초장 얻고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하나를 얻었다, 얻었네, 얻었구나. 화초장 하나를 얻었다. 얼씨구나, 화초장, 또랑 하나 건너뛰다가, 아차 잊었네. 아이고 이것이 무엇이냐. 거꾸로 붙여도 모르는구나. 초장화, 화장초, 장초화, 아이고 모르것다. 장자를 모두다 들먹거려 보자. 초장, 간장, 된장, 땟장, 송장, 고치장, 토장, 개장, 웃장, 천장, 아이고 모르겄네. 즈그 집으로 들어간다. "여보아라, 마누라. 집안어른이 어디갔다가 내집구석이라고 들어오면 우루루루루 쫓아나와 영접하는게 도리옳지, 좌우부동이 웬일인가. 예라, 이사람 요망허다." 놀보마누라가 나온다. 놀보마누라가 나와 "아이고, 여보 영감. 영감 오신줄 내 몰랐소. 내 잘못되얐소. 요리 오시요, 이리 오라면 이리와." "놓아두어라 이사람아. 내내진게 무엇이냐." "아따 무겁소 내려놓으시오."
"네가 만일 몰랐다는 말이여, 자쳐놓고 복판을 뒷꿈치로 팍 밟아가꼬 솩 비벼버릴텡께 아르켜내." "아따 당신은 아시요." "아, 나는 알지만 네가 무엇이냐 말이여." "그전에 우리어머니가 서울서 시집올제 말이요, 그것을 이름부르기를 장농인디, 그것을 화초장이라고 헙디다." 놀보놈이 탁 맥혔다가 툭 터지는 바람이 아 이놈이 촌수도 모르고 "워메워메, 꼭 그런때는 우리 어메 같으네.""여보시요, 에미를 데리고 사는디가 어디있단 말이요." 놀보놈이 미안해서 "거, 미안하게 됐구마. 그런디 참말로 흥보놈이 부자는 대부자데? 아 우리살림은 거그다 댕께 곁방 구석도 안되야." 솔보마누라가 심술이 나가꼬 "워마, 고것들이 어떻게 해서 고렇게 부자가 됐는고?" "아, 이 사람아. 부자되기 천하쉽데. 아, 홍보는 제비다리 한마리 부러진 것을 잇어줘가꼬 부자가 됐댜. 아 그런디 우리동네 제비 안 많은가. 나는 제비 백마리만 잡어서 다리를 그냥 착신착신 분지르면 천하갑부가 되겄다." 요놈이 제비를 몰러 나갈러고 허는디, "요새 내가 제비를 본제가 오래거든. 밥이나 좀 싸주소." 아 이놈이 밥을 싸가꼬 사방으로 돌아댕기며 제비 낯바닥을 볼라고 아무리 돌아당겨도, 그때가 벌써 삼동인디 제비가 없지. 이놈이 답답하고 환장해서 동네사람들 부역을 시키는디 삼시먹고 닷냥씩, 술, 담배, 점심 사주고 이놈이 제비를 몰러 나가는디, 이 제비 몰러 나가는 곡조는 옛날 양반광대, 즉 권삼득씨가 마련했던 것이었다. 오늘까지 한 사백년을 내려오는디 꼭 이렇게 부르던 것이었다.
제비 몰러 나간다. 제비 후리러 나간다. 이때 춘절을 생각하니 하사월 초팔일, 연자 나비는 훨훨, 제비를 몰러나간다. 혹희씨 맺은 그물을 에 후리쳐 들어메고 제비 몰러 나간다. 방당산으로 나간다. 수양버들에 앉은 꾀꼬리 제빈가 의심, 연비여천에 소리개만 봐도 제빈가 의심, 툭 차 후여 쳐 저 제비여. 이편은 좌두봉, 저편은 우두봉, 건넌봉 맞은봉 방당산으로 올라가 그물을 툭 차 후여쳐 저 제비야, 네가 어디로 행하느냐. 그 집으로 들어가지 마라. 그집은 천화일에 지은 집이라 화급동량허니, 좋은 내집으로 들어와서 보물박씨를 물어다가 천하부자가 되게 하려므나. 으~으으.
놀보가 제비를 몰러 산중으로 돌아다니느라고, 코가 깎여 피가 나도 모르고 환장을 하고 댕기자니 그때부터 살림파할 징조였다.
산엽, 홍엽, 이월하에 화산석경 올라가고, 설천운상 북풍한에 초소오산을 다 찾어도 제비 볼수 전혀 없구나. 놀보놈이 말경에는 제비한테 환장하야 상사병이 일어날제, 길짐승은 족제비만 좋아하고, 그릇은 모제비만 쓰고, 음식은 수제비만 먹고, 종이는 간제비만 접어놓고, 어짜다가 화가 나면 목제비질을 허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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