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어느 시골 노부부의 슬픈 설맞이...

뛰노라면 2010. 3. 25. 16:45

 

어느 시골 노부부의 슬픈 설맞이


세상 사람들은 다들 즐겁다고 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호주제(戶主制) 폐지를 잘 했다고 떠드는데...
시골에 사는 어느 노부부는
즐거운 설이
호주제 폐지로 슬프기만 합니다.



지난해만 해도
시골 노부부에게는 며느리 손자가 서울에서 살고 있어서
해마다 남들처럼 추석. 설 때에는
아들 식구가 시골에 내려와
다른 가정처럼 차례도 지내고 성묘도 하고
다복한 가정이었습니다.



워낙 손이 귀한 터이라 손자는 삼대독자랍니다.
할아버지 혼자. 아들혼자. 손자혼자.
형제가 없으니 삼대에 걸쳐 독자라고 부른답니다.



그런데 이번 설날은 노부부에게 가슴 미여지는 설날입니다.
불행은 삼년전 아들이 병으로 죽은 것입니다.
며느리하고 손자는 그래도 슬픔을 이기며
며느리가 직장을 다녀 손자를 잘 키웠습니다.



추석, 설. 때는 며느리와 손자는 꼭 시골에 왔습니다.
손자가 장손이라 모두 귀여워했습니다.

그런데 노부부의 작은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젊은것이 혼자 못살 거라고 짐작은 한 터이지만...
작년 가을에
며느리에게서 조심 스레이 개가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개만 까닥 했습니다.
그리고 겨울에 손자를 데리고가서 살기로 한 재혼 처라고 했습니다.



노부부는 잘 키워서 ……
성이 최씨니 어디 가겠냐
커서 우리집안 대를 이어야 하니까?
노부부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월 초에 6살 손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할아버지 나 성이랑 이름이랑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무슨 이야긴 줄 잘 몰랐는데
1월부터 호주제 폐지가 되면서
재가를 하면 성도 바꿀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설마 했는데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집안은 어쩌라고..



성도 이름도 바꾸어 버린 손자가
훗날 장손이라고 할아버지 최씨 집안 제사 묘 관리를 하겠습니까?
하도 답답해서 동네 이장한테 하소연 해봤더니
법이 그러니 무슨 재주가 있겠냐고...

그래서 지난번 서울로 며느리를 찾아가서 대판 싸웠습니다만.
세상에 무슨 놈의 법이
남의 집 문중의 문을 닫게 한다고 노부부는 분해했습니다.

법이 그렇다는데...
노부부는 이 법은 악법이라고 말해 보지만. 법이 그렇답니다.

이번 설에 손자가 할아버지 할머니 찾아 시골에 오겠습니까?



수소문 해보니
이번 설 연휴에 재혼가족들 하고 외국여행을 가려 한답니다.
힘없는 노부부의 이번 설은
정말 가슴이 미어지는 슬픈 설이 될 것입니다.
한 가락 희망이 손자였는데..

무슨놈의 법이 핏줄도 바꿔...
생각만 해도 억울한 악법입니다.

노부부는 한 숨만 나오는 슬픈 설날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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