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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방짜유기박물관 - 전국 최초의 방짜유기 전문 박물관

뛰노라면 2012. 11. 12. 11:53

 

 대구방짜유기박물관 - 전국 최초의 방짜유기 전문 박물관

 

대구방짜유기박물관

전국 최초의 방짜유기 전문 박물관

 

방짜유기박물관은 전국 유일의 방짜유기를 테마로 한 전문박물관으로서 자랑스러운 고유문화유산인 방짜유기와 그 제작기술을 전승 보존하며 후손들에게 '우리 것'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알리고 지역문화 발전을 이루고자 2007년 5월 25일 개관하였다.

수려한 풍광으로 유명한 팔공산에 자리 잡은 박물관은 지하1층, 지상2층(대지면적17,880㎡ 건축연면적 3,758㎡)의 규모로 유기문화실, 기증실, 재현실 등 3개의 전시실과 문화사랑방, 영상교육실, 야외공연장, 기획전시실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 대구방짜유기박물관, 대구

 

방짜유기라는게 어떤건지 생소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방짜유기를 알게된 것은 작년 성남에 있는 양대창 전문점에 가서 알게되었다.  양대창 전문점의 이름이 '방짜'였다.  방짜유기로 만든 불판에 양대창을 굽는 곳이라 이름이 방짜였다.

 

 

방짜유기란?

유기의 종류중 가장 질이 좋은 유기로, 구리와 주석을 78:22로 합금하여 거푸집에 부은 다음, 불에 달구어 가며 두드려서 만든 그릇이다.

유기의 종류는 제작기법에 따라 방자(方字)와 주물(鑄物), 반방자(半方字) 등이 있다. 가장 질이 좋은 유기로 알려진 방짜유기는 먼저 구리와 주석을 78:22로 합금하여 도가니에 녹인 엿물로 바둑알과 같은 둥근 놋쇠덩어리를 만든다.

이 덩어리를 바둑 또는 바데기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여러 명이 서로 도우면서 불에 달구고 망치로 쳐서 그릇의 형태를 만든다.

주물 유기와는 달리 정확히 합금된 놋쇠를 불에 달구어 메질(망치질)을 되풀이 해서 얇게 늘여가며 형태를 잡아가는 기법이다.

이런 기법으로 만들어진 방짜 유기는 휘거나 잘 깨지지 않으며 비교적 변색되지 않을 뿐 아니라 쓸수록 윤기가 나는 장점이 있다. 또한 방짜는 독성이 없으므로 식기류를 만들 뿐만 아니라 징·꽹과리 같은 타악기도 만든다. 특히 악기는 방짜기술만의 장점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으로 손꼽힌다.

 


 

대구방짜유기박물관 관람시간

4월 11일부터 10월 30일까지는 10시부터 19시까지 관람가능.

11월 01일부터 익년 03월까지는 10시부터 18시까지 관람가능.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이며,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공휴일이 끝나는 그 다음 평일이 휴관이다.

 

관람료는 무료!

 

 

방짜유기박물관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것은 '특대징'이다.  아름다운 해설사님께서 징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_+

 

'대징'이란 불교에서 사용하는 쇠북으로 법당에 걸어놓고 의식을 시작할 때 치는 징이다.  사진에 보이는 징은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 이봉주 선생님의 작품으로 지름이 161cm, 무게가 98kg으로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소리의 울림과 퍼짐이 맑고 웅장한 걸작품이라고 한다.

 

 



 

특대징 앞에 있는 녹색 버튼을 누르면 징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징의 맑고 고운소리가 박물관 안에 울려퍼지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소리였다.

 

 

대구방짜유기박물관의 주요 소장품은 1983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로 지정된 유기장 이봉주翁이 평생 제작하고 수집한 방짜유기 275종 1,489점으로서 대구광역시가 무상 기증받아 소중히 관리하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인 이봉주 선생!

천년의 방짜유기를 만들고 지키는 방짜의 명인!

경북 문경시 가은읍 방짜유기 전수관에서 오늘도 유기를 만들기 위해 화덕의 불이 쇳덩이를 달구고 있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생활고에도 방짜공장을 만들어 망치질을 멈추지 않고 명맥을 유지 하기 위해 애를 썼다.

 

 

 

 

우리나라 그릇의 역사

 

 

 

석기시대

사냥이나 어로, 채집과 더불어 초기 농경의 형태가 나타나고, 하천 유역을 주된 생활터전으로 삼던 신석기시대가 되자 잉여생산물의 저장을 위해 토기가 처음 만들어졌다.  진흙으로 그릇을 빚어 말린 뒤 600~800도 정도의 불에서 구워내어 사용하였다.  채집 혹은 생산물을 담아 움집 바닥에 반쯤 물어 보관할 수 있도록 밑바닥이 뾰족한 형태로 제작된 '빗살무늬토기'가 많이 사용되었다.

 

 

 

 

 

청동, 철기시대

청동기시대에는 본격적으로 농경이 시작되어 수확한 곡식을 안정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토기가 필요해 졌다.  또한 생활터전이 구릉이나 평야로 확대됨에 따라 토기 모양도 변해 밑바닥이 좀더 평평한 토기를 만들었다.

청동기시대에는 표면에 아무 무늬가 없는 '민무늬토기'를 많이 사용하였으며, 초기철기시대가 되면 '덧띠토기'를 사용하게 되는데 중국으로부터 물레 사용기술이 전래되고 가마를 사용하기 시작하여 보다 더 단단한 와질로 다양한 토기를 만들게 되었다.

 

 

 

 

 

 

삼국·통일신라시대

삼국시대는 상·하층으로 구분된 사회제도와 농업기술의 발달로 식기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가마 축조기술 발달로 불의 온도를 보다 높여 그릇을 단단하게 구워낼 수 있었으며, 이전의 와질토기에서 도질로 발전하였다.  그릇의 형태로 굽다리접시·그릇받침·항아리·병 등 더욱 다양한 종류의 식기를 제작하였다.  상류층은 기호에 따라 금은기·도금기·청동기·칠기류 등을 사용하였다.

 

 

 

 

 

고려시대

고려시대에는 중국의 영향으로 자기를 처음 만들기 시작하여 전성기인 11~13세기에는 세계 최고의 청자 예술품인 '비색청자(순청자)'와 '상감청자'를 만들었다.  '상감기법'이란 그릇표면에 음각으로 무늬를 새긴 후 그 안을 백토나 자토로 메우고 구워낸 것을 말한다.

일반 평민들은 대량 생산이 가능했던 투박하고 단단한 질그릇과 도기류 등을 주로 사용하였다.  그릇·병·술잔·찻잔·주전자·유병 등은 자기로 만들었고, 물·쌀 등을 담는 큰 저장용기 또는 술·양념 등을 담는 단지는 질그릇으로 만들었다.  상류층은 청동대야·청동그릇·제기·불기 등 청동제품을 실생활용으로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조선시대·근대

조선시대가 되면 회색 또는 회흑색 태토에 백토를 분장하여 유약을 발라 구운 분청사기와 백자를 사용하다가 임진왜란 이후 분청사기는 거의 사라지고 백자를 많이 사용하게 된다.  청자와 함께 고려 초부터 만들기 시작했던 백자는 유교의 영향을 받아 검소하고 질박하던 문화적인 경향을 띄었던 사대부를 중심으로 선호하였기에 조선시대 자기의 주류를 이루었다.  일반 평민들이 주로 사용했던 질그릇은 모양에 있어 분청사기나 백자를 모방하였으며, 생산물 중에는 특히 단지와 병 종류가 많아 서민 사이에서 필수품으로 큰 사랑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목기류로는 작은 그릇, 함지박, 바가지, 각종 제기 등이 있다.

양반 가정에서는 유기그릇을 자기와 함께 식기로 사용하였는데, 조선 후기에는 일반가정에서도 유기의 수요가 늘어나자 방짜유기 대신 대량 생산이 가능한 주물유기도 생산하였다.

 

 

 민무늬 옥식기, 대구 방짜유기박물관

 

민무늬 옥식기는 조각없이 제작된 그릇을 뜻하며, 반방짜유기 방식을 사용했다.

반방짜유기란, 주물유기에 방짜유기 제작 방법을 절충한 것으로 주로 소형식기류를 제작한다.  먼저 주물유기 기법으로 그릇을 U자 모양으로 만든 다음 여러 차례 불에 달구어 가면서 오목하게 판 곱돌 위에 놓고 '궁구름대'라는 공구로 유기의 끝부분을 오목하게 방짜식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놋상, 대구 방짜유기박물관

 

방짜유기 방식으로 만든 놋상

방짜유기란, 구리와 주석을 함께 녹여 만든 놋쇠덩이(바둑)를 불에 달구어 여러 명이 망치질을 되풀이해서 얇게 늘여가며 형태를 잡아가는 방법을 사용한다.  방짜유기는 휘거나 잘 깨지지 않고 다른 메자국(망치자국)의 멋이 은은히 남아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방짜유기 제작과정, 대구 방짜유기박물관

 

 

  


 닥침질 모형, 대구 방짜유기박물관

 

 

 

 가질 모형, 대구 방짜유기박물관

 

 


 

유기공방이란 유기를 제작 하는 공간을 말한다.  이곳 유기 공방은 1930년대 평안북도 정주군 납청에 있었던 유기 공방을 재현한 것이다.

 

 

 유기공방, 대구 방짜유기박물관

 

 



 유기공방, 대구 방짜유기박물관

 

 

 

놋점은 다른말로 유기전이라고도 하며, 유기를 판매하는 곳을 말한다.  원래 놋점은 놋그릇을 만들어서 판매까지 이루어지던 곳이었으나, 후에 분업화가 이루어지면서 판매만을 담당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놋점, 대구 방짜유기박물관

 

 

 

수라상, 대구 방짜유기박물관

 

 

 

주안상, 대구 방짜유기박물관

 

 


 요강, 대구 방짜유기박물관

 

 

 

 대야, 대구 방짜유기박물관

 

 

 양푼, 대구 방짜유기박물관

 

 

 바라, 대구 방짜유기박물관

 

자바라는 놋쇠로 만든 2개의 원반을 마주쳐서 소리를 낸다.  인도에서 만든 악기라고 전하며, 중국 송나라 사신이 쓴 <고려도경>에 자바라와 비슷한 '요발'에 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써 온 악기임을 알 수 있다.  자바라는 불교 의식과 관련 있는 악기로 여겨지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불교가 전파되었던 중국, 일본의 불교문화에서도 자바라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바라는 대취타에 사용될 때에는 '자바라', 절에서 부처님께 향을 올릴 때에는 '동발', 궁중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출 때 사용하던 크기가 작은 자바라는 '향발', 무속음악을 연주할 때 쓰는 자바라는 '제금'이라고 용도에 따라 다르게 불렀다.

 

 

 

 징, 대구 방짜유기박물관

 

은 고려 공민왕 1351-1374 때 명나라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다.  취타, 불교음악, 종묘제례약, 무속음악, 농악 등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는데 종묘제례에 사용될 때에는 '대금'이라고 불렀다.

징은 사용 용도에 따라 서로 다른 종류의 징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예컨대 전쟁 시 군사들을 불러 모으거나 신호를 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징은 크기가 크고 무거운 '대징'을 사용해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지도록 하였다.  또 무당이 굿을 할 때 사용하는 징은 비교적 크기가 작고 가벼우면서도 소리가 큰 '광징'을 사용하였다.

 

 

운라, 대구 방짜유기박물관

 

운라는 '구운라', '운오'라고도 부르며 조선시대에 화가 김홍도가 그린 <평양감사환영도>에 운라 연주 모습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조선시대 말 무렵으로 보고 있다.  운라는 놋쇠로 만든 작은 징을 틀에 매달아 나무망치로 쳐서 소리를 내는데 징의 크기는 같지만 두께가 저마다 달라서 두꺼울수록 높은 음을 낸다.  맨 아래 왼쪽에 위치한 징이 가장 낮은 소리를 내고 오른쪽으로 가면서 소리가 차츰 높아지며 둘째 줄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갈수록 높아지고 셋째 줄은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소리가 높아진다.  맨 위에 걸린 징 하나가 가장 높은 소리를 낸다.  운라는 소리가 가볍고 경쾌해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거나 행진할 때 많이 사용되었다.

 



 좌종, 대구 방짜유기박물관

 

좌종은 불교 의식행사에서 주로 사용하는 주발 형태의 소리도구로 '울림주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종의 윗부분을 막대로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데 아주 맑은 음색의 소리가 난다.  좌종은 지역에 따라서 서로 다른 기형으로 제작되는데 한국과 일본의 좌종은 몸체 중간부가 볼록하고 위로 올라가면서 좁아지는 형태를 띠며 티베트나 인도의 좌종은 몸체의 입구가 넓고 높이가 낮은 가로로 긴 대접 형태를 띤다.  한국과 일본의 좌종은 같은 중량의 티베트, 인도의 좌종 소리와 비교했을 때 형태 특성상 소리가 바깥으로 퍼져나가기 보다는 몸체 안쪽에서 맴돌며 소리의 여운이 오래 지속되는 특징을 가진다.

 

 

고리밥통, 대구 방짜유기박물관

 



 임금님봉황수라상, 대구 방짜유기박물관

 

궁중의 12첩반상, 즉 수라상은 원반에 9첩, 곁반에 3첩을기본으로 차린다.  또한 임금의 수라상에 오르는 반상기의 이름은 일반 사대부집에서 쓰는 명칭과는 구별이 되었는데 예를 들어 밥을 '수라', 밥을 담는 그릇을 '수라기'라고 했고 김치를 담는 그릇은 '김치보'라고 불렀다.  그 밖에 전골을 전골냄비에, 반찬은 뚜껑이 있는 납작한 찬그릇인 쟁첩에, 찜은 꼭지달린 뚜껑이 있는 큰 그릇인 조반기에 담으며 국을 '갱', 국그릇을 '갱기'라고 불렀다.  국물이 있는 찌개나 찜 등의 반찬을 '조치'라고 하고 담는 그릇은 '조치보'라 하며 갱기 안에 들어갈 정도의 크기로 치수 또는 숭늉은 다관(찻주전자)에 담고 찻주발과 함께 쟁반에 받쳐서 곁상에 올려 놓는다.

 

 

 

불교제상, 대구 방짜유기박물관

 

 

 

제사용제기, 대구 방짜유기박물관

 

 


 대종교제례, 대구 방짜유기박물관

 

 

 

 

 

박물관 야외에는 전통 놀이인 투호던지기, 고리던지기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며, 직접 징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도 있다.

마음의 나쁜기억과 상처를 씻어주는 징을 치고 나왔다.

 

 

대구 방짜유기박물관은 우리나라 전통 그릇인 방짜유기에 대해 배울 수 있으며, 방짜유기로 만든 다양한 그릇과 악기 등을 관람할 수 있다.

관람료도 무료이니 꼭 한번 방문해서 방짜유기 그릇의 아름다움을 확인해보기 바랍니다.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399
053-606-6171

 

 

■유기세척법

 

유기제품을 처음 구매하시면 광택이 많이 납니다. 처음 사용하시는 분은 이런 광택을 계속 유지하려고 부드러운 천으로 닦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유기는 거친 수세미로 닦아줄수록 유기자연의 색인,은은하고 고풍스러운 색깔이 나오며, 얼룩도 덜 합니다.

 

 



 

■유기보관법

 

제기는 사용 후 장기간 보관할 경우 습기와 공기를 차단하여 보관하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