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사(大林寺, 다이린지)라는 절에 안중근 의사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대림사는 작고 아담한 시골의 절이다.
모셔져 있다.
제단이 하나 놓여 있다.
왼쪽에 모셔진 분은 지바 도시치(千葉十七)씨 부부이다.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에서 일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분이다.
그런데 그런 안중근 의사의 위패가 왜 일본의 절에 모셔진 것일까?
안중근 의사가 감옥에 갇혔을 때,
일본군 헌병이었던 지바 도시치라는 분이 그곳에 근무했다고 한다.
그도 처음에는 일본의 유명한 정치가를'암살'한 안중근 의사에 대하여
분노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점차 안중근 의사가 동양 평화를 갈구하는 굳은
의지와 높은 인품의 소유자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 두 분은, 한국 독립군과 일본군, 사형수와 감옥 간수,
가톨릭 신자와 불교도라는
장벽을 넘어 서로 존경하며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
안중근 의사는 결국 교수형으로 32세의 짧은 생애를 마친다.
이때 안중근 의사는 마지막으로 지바 도시치씨에게
"爲國獻身軍人本分" (나라 위해 몸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독립군에 있을 때 일본군과 맞서 싸우면서도
항상 포로들은 인도적으로 살려보내곤 했습니다."
그 때문에 때로는 일본군으로부터 불의의 일격을 받아 피해를
당하기도 했었지요. 하지만 비록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맞서 싸운다
하더라도, 무고한 목숨을 마구 해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겠지요."
"그런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게 됩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근대화를 앞당긴 정치가일 수도 있겠으나,
이웃나라에게는 침략자나 다름없었고,
동양의 평화를 해치는 그를 부득이 사살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눈물로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지바 도시치씨는
군대에서 제대한 뒤, 고향 센다이에서 철도원으로 일하면서도,
평생 안중근 의사의 위패를 모시며 그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고 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민요 "아리랑"이 걸려 있다.
이 곳에서는 매년 안중근 의사의 추도식이 열린다고 한다.
지금은 두 분이 저 하늘에서 다시 만나 동양의 평화를 기원하고 계시겠죠.
하지만 안중근 의사의 높은 신념,
그 한국인 청년 사형수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우정을 나누었던 지바 도시치씨!
그리고 그 인연을 지금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유족과 대림사 관계자 여러분들.
가라"는, 절에 계신 아주머니의 상냥한 권유를 차마 뿌리칠 수 없었다.
이윽고 맛있는 냉중화비빔면(冷やし中華, 히야시추카)이 나왔다.
시골 절의 푸근한 인심은 한국이든 일본이든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낭만적인 기차길 옆 오막살이 같은 것은 아니다.
굉음과 함께 질주하는 신칸센 고속열차가 시간마저 멈춘듯한
돌아오지 않는 강 - (하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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